[시론] 최저임금의 역설

입력 2023-08-15 17:42   수정 2023-08-16 00:10

미친 듯한 혹서에 바캉스라도 가볼까 했는데 하루에 100만원이 든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이 어느덧 발밑에서 목까지 차올랐다. 어쩌다 이리됐을까? 그 근원은 여럿이지만 ‘그놈의 최저임금’이 한몫 단단히 한 것도 사실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노동계와 사용자단체의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올해 대비 2.5% 오른 시급 9860원으로 확정됐다. 노동계는 볼멘소리를 하지만 주휴수당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최저임금은 1만원을 넘는다.

5년 전인 2018년 하루 8시간씩 한 달에 157만3770원을 받았지만(시급 7530원 209시간 기준) 내년엔 206만740원을 받을 것이니 근로자의 급여가 오르는 것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을 5만원 정도로 올리면 전 국민이 꿈에 그리던 억대 연봉자가 되고 세계 1위의 부자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런 생각은 공상이고 실현 불가능한 위험한 상상이다. 문제는 이런 무모한 상상을 지난 정부에서 현실로 옮기려 했고 5년간 경제성장률을 훌쩍 웃도는 최저임금 인상 랠리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월급을 줄 여력을 감안하지 않고 갑자기 높여버린 임금은 국가 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돼 앞만 보고 달리기에도 벅찬 각 경제주체의 발목과 어깨에 모래주머니를 채운 꼴이 돼버렸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우려와 비판에 “한 시간에 몇백원 더 못 줄 사업은 그냥 그만두라”는 식의 비아냥이 넘쳐났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국가가 임금의 최저선을 딱 그어버리면 물가는 그만큼 오를 수밖에 없다. 기업은 물건값을 올려서라도 오른 월급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4대보험 등 사회보험료 인상도 만만치 않다. 노동계가 월급 빼고 다 올랐으니 시급 1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의 근거가 되는 급격한 물가 인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게 지난 몇 년 동안 이어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었다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가처분 소득 또한 마찬가지다.

올 6월 최남석 전북대 교수는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인상되면 사라지는 일자리가 최소 2만8000개에서 많게는 6만9000개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행 최저임금 제도는 어떻게든 고쳐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1.5%에서 1.4%로 낮췄다. 앞으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5% 이상 고성장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계가 훌쩍 높은 안을 제시하고 경영계는 낮은 안을 내놔 그 중간에서 공익위원들이 조정한 액수에 합의하는 지금 같은 방식은 이제 버릴 때가 됐다. 차라리 최저임금을 동결하고, 한계 노동계층에 근로장려금을 인센티브로 얹어주며 확실한 세액공제를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저임금은 길고 긴 도미노의 첫 블록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그 여파가 전체 경제 생태계로 시차를 두고 전달된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 인상 효과는 대기업 직원에게도 적용된다. 원래부터 최저임금을 훨씬 웃도는 돈을 받는 이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최대 수혜자다. 그러나 도미노의 제일 마지막에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 한계근로자, 중소기업 경영주와 재직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초과적인 노동에 시달리거나, 폐업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가장 열악한 경제주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최저임금제도가 이들의 형편을 옥죄는 역설을 이제라도 직시하고 이 제도의 근본적 개편에 머리를 맞대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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